자꾸 남의 눈치를 봐요

‘한국 사람들이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길이 곧 ‘Nunchi(눈치)’다’라는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제목 그대로 내용은 눈치를 ‘빨리’, ‘잘’ 보는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그 이론을 증명하듯 인터넷에는 ‘눈치 늘리는 테크닉’, ‘눈치의 기술’, ‘눈치 키우기 전략’ 등 쉽게 그 노하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까지 눈치 잘 보는 법을 배우고 익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눈치 보는 사회
필자는 오랜 시간 미국계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미국 회사였지만 주 업무는 한국과 일본 기업의 세무 관리였기에 대부분의 상사나 동료들이 한국이나 일본계였다. 나의 ‘눈치 온도’는 각 부서를 옮겨 다닐 때 마다 달랐다. 다른 부서와는 달리 한국 부서에서는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끝내는 것을 넘어 행동, 말투, 옷차림까지 신경을 써야 했으며 특히 클라이언트와의 자리에서는 그런 부분이 더욱 더 강조되곤 했다.
집단주의인 우리 사회에서는 정형화된 삶의 틀과 기준이 분명히 있다. 유행에 따른 옷차림, 머리 모양, 또 연령별에 따른 사회적 로드맵이 분명하다. 이렇게 주변과의 경쟁이 필수적이고 타인과 수직적 관계가 요구되는 사회일수록 각 개개인은 눈치를 보고 또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조금만 다른 모습을 보이면 개성으로 존중 받는 대신 타인의 질타를 받곤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들과 이야기할 때 종종 아이들이 ‘눈치’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말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마땅한 영어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왜 미국에는 눈치라는 단어가 없는 것일까? 개인의 사생활 존중 혹은 수평적인 인간 관계가 이뤄져 있는 사회일수록 눈치를 보지 않는다. 누구와 있든 어떠한 자리에서든 소신 있게 자신의 뜻과 생각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한 여름에도 가죽 잠바와 털 부츠,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난 가끔 ‘저 사람들이 저 모습으로 서울 한복판을 걷고 있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하며 재미난 상상을 해보곤 한다. 제삼자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사람들을 가끔은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한편 부러운 마음으로 보는 건 나에게 눈치 문화가 익숙해서일까?

원인 1. 유년 시절의 상처
작년 큰 인기를 얻었던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의 아들 필구는 엄마가 새출발을 하는데 자신이 ‘혹’이 된다며 아빠 집으로 가서 살기 시작한다. 새엄마와 의붓 동생이 있는 집에서 까치발로 걷고 작게 말하며 눈치를 보는 필구를 발견하고 동백은 자신을 닮아간다며 가슴 아파한다. “너 왜 눈치 봐? 너 누가 이렇게 말 못하고 눈치 보래?”하며 필구에게 화를 낸다. 고아이고 미혼모인 동백 역시 늘 세상의 편견 속에서 눈치를 보고 살았기에 필구까지 그렇게 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부모의 부재, 이혼, 다툼, 학대 또는 학교에서 친구들 관계에서 받은 어린 시절의 상처는 불안한 어른으로 만들 수 있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불쑥 올라오는 어린 시절의 억압된 감정 상태가 눈치 보는 일상을 만든다.

원인 2. 건강한 자존감이 형성되어 있지 않을 때
어린 시절의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건강한 자존감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 어른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비판하고 남과 비교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의견을 나누고 싶은데 거절당할까 두렵다. 또 말을 하고 나면 왜 그 말을 했을까 자책하기도 하고 자신이 바보 같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표정과 행동, 말투에 극도로 신경을 쓰며 마음을 읽으려고 애쓴다. 차갑게 대하는 동료나 상사를 보며 ‘내가 싫어졌나?’,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걸까?’라는 생각에 잠기다 ‘역시 난 형편없는 사람이지’하며 결론을 내리곤 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눈치를 보지 않는다. 자신이 실수를 하거나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해도 자신의 가치를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대한 신뢰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신뢰로까지 이어진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과 실수를 확대하여 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거짓된 자아로 나를 마주하며 나아가 타인의 생각으로 파고든다.

조언 1.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오늘 내가 한 말, 하지 않은 말, 내가 한 행동을 곱씹으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날은 이제 그만 하기로 하자.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넘겨짚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온통 예민해져 시간을 쏟고 있지만 실상은 그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기억하자. 내가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

조언 2. 남보다 나를 먼저 챙기자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을 타인보다 못하게 대할 때가 많다. 눈치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감정, 느낌, 의사는 무시한 채 남을 더 의식하고 남의 감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타인이 원하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우선으로 두고 자신의 감정을 살뜰히 챙겨주는 연습을 하도록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에서 내가 느끼는 것을 충분히 표현하며 살자.

조언 3. 내면 욕구에 귀 기울이기
극도로 남의 눈치를 보는 마음의 이면에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러다 보니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며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 그러다 보니 ‘~척’하며 살고 있고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불러오고 에너지 소모를 요구한다.
언제나 당당해 보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이효리가 언젠가 방송에 나와 한 말이 기억난다. “내가 예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날 예쁘게 봐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사람들이 예쁘게 안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예쁘게 안 봐서 그런 거야.”
이렇듯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 자신을 내가 먼저 사랑해 주고 인정해 줌으로서 자존감을 지켜내야 한다. 내가 나를 예쁘게 보자.

조언 4. 눈치 말고 센스와 배려
동료나 상사와의 적절한 사회적 상호 관계를 위해 어느정도 센스를 발휘하는 것은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된다. 상대방의 생각과 상황을 헤아리고 센스 있게 배려하는 습관은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의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길이 곧 ‘Nunchi’(눈치)다’ 라는 뉴욕 타임즈의 기사가 나에게는 아쉬움으로 읽혀졌다. 눈치를 권장하는 듯한 그래서 눈치를 많이 볼수록 성공하고 행복해진다는 내용을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는다 해도 성공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런 극단적인 사고로 인해 우리 사회가 더 빡빡하게 돌아가는 건 아닐까? 누구의 기준에서든 행복은 남이 아닌 내가 내 눈치를 가장 잘 살폈을 때, 그리고 그 감정을 잘 돌보아 주었을 때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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